( 2009-02-01 22:51:52 , Hit : 1935 ) 
 똥꽃

똥꽃



감자 놓던 뒷밭 언덕에

연분홍 진달래 피었더니

방안에는

묵은 된장 같은 똥꽃이 활짝 피었네

-전희식-

열혈 노동운동가였던 전희식(50)씨.
10여년 전 자연농업으로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꾸기로 인생 진로를 수정하고 ‘귀농’했던 그는 3년 전 서울 큰형 집에 사는 어머니를 찾아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단독주택 3층 두 평 남짓한 외딴방에서 기저귀를 찬 채 밥과 약을 받아먹으며 두문불출하던 어머니는 막내인 그에게 “오줌 누는 데가 따갑다”며 하소연했다.
그때까지 단 한번도 일부러 찾아뵌 적이 없었고, 서울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하룻밤 신세를 져야 할 때나 형 집에 들른 김에 어머니께 인사드리는 정도였다.
한번 얘기를 꺼내면 끝이 없고 냄새가 진동하는 어머니 방에 누구도 오래 머무르려 하지 않았다.
10년 전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고관절이 바스러져 철심을 넣은 뒤 아랫도리를 쓰지 못했고 귀도 거의 들리지 않게 됐다.
누워 지내면서 치매가 진행됐다.
작은형이 식사 때마다 어머니 틀니를 칫솔로 닦을 때는 보는 것만으로도 꺼림칙해 고개를 돌리곤 했던 그였으나
그날 벌겋게 짓무른 어머니 아랫도리와 하얗게 세버린 체모를 보고 울었다.
그 많은 자식 키우면서 어머니가 똥오줌 묻은 옷이나 걸레를 빠신 햇수만큼은 다 못하더라도 두세 자식 몫은 하리라 마음먹었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 내 건강한 시절 몇 년을 바치리라 마음먹었다.

이렇게 시작한 그의 어머니 모시기는 세인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케이비에스 인간 극장에 비쳐진 전희식씨와 회복된 어머니의 모습은 과학을 뒤집는 기적의 드라마입니다.

어머니와 살면서 전씨가 가장 신경 쓴 것 중의 하나는 똥오줌 가리기였다.
먼저 화장실을 어머니가 사용하기 편하게 만들고 음식 섭취와 배뇨시간의 상관관계를 면밀히 관찰한 뒤, 때 맞춰 변기를 갖다 드렸습니다. 기저귀를 없앤 것이다.
기저귀를 채우는 것은 “똥오줌도 못 가리는 애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공인하는 과정”으로, 거기서 수치감을 느끼면 심리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두 달 이상 노력한 끝에 어머니는 배뇨감각을 회복하고 몸을 끌고 가 뒷문 쪽 전용 뒷간을 이용하게 되었다.

위의 시는 그 와중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감자를 심었던 뒷밭에서 연분홍 진달래를 바라보며 생명의 봄에 취해있던 사이,
집에서는 어머니가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똥을 싸는 정도가 아니라 온통 집안에 똥칠을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전희식씨에게는 그 모습에 허탈해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똥꽃'으로 승화시키는 끈질긴 사랑이 있었습니다.
인내와 달관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집념어린 사랑의 의지가
처참한 몰락의 상징인 그 악취덩어리를 향기로운 꽃으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어머니에게 파란 하늘도 보여 드리고 바위와 나무, 비나 눈, 구름도 보여 드리려고 한다.
철따라 피고 지는 꽃도 보시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계곡의 바람결도 느끼시고
크고 작은 산새들이 처마 밑까지 와서 노닥거리는 것도 보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남 함양 출신인 어머니는 14살 때 시집와서 6남매를 눈물로 키웠다.
아버지가 43살에 돌아가신 뒤의 모진 과부살이였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자연이라는 삶의 터전을 먼저 마련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지성으로 받들어 모셨습니다.
전씨는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닌 생산적인 작업,
예컨대 청국장 만들기, 가죽자반 담기, 배추 심기, 쑥 뜯기 등을 어머니가 주도하도록 했다.

어머니는 아궁이 불도 지폈다.

양말과 바지를 몰래 찢어 어머니에게 바느질을 부탁하고 나무쌓기 놀이를 유도했다.

믿음 때문인지 어머니는 아들의 말은 용케도 잘 알아들었다.

모내기, 마을회관 가기, 사찰 행사 참가, 고향 나들이, 기도회 개최 등

아들은 어머니가 사람들과 어울려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만들었다.



산중에 내리는 하얀 눈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기 시작한 어머니에게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아들은 지성으로 그런 어머니를 공경했습니다.



전씨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존엄’, “건강보다도 존엄”이었다.

어머니에겐 반드시 존댓말을 썼고 집을 드나들 때는 절을 올렸으며,

집안 대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일일이 알려드리고 허락을 받았다.

어머니를 관리나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주체, 주인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동안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은 어머니 얘기를 한결같이 비웃거나 개탄하며 무시하거나 그게 아니라며 교정해주려 애썼다.

어머니는 좌절했다.
그러다가 끝내는 언제나 부정당하는 자신마저도 포기했다.
나는 바로 이게 치매라고 생각한다.
포기한 삶의 틈새로 끼어든 이물질들이 치매다.
"포기한 삶의 틈새로 끼어든 이물질이 치매다."
참으로 놀라운 발상의 전환입니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느니라." (요13:1)

진정한 사랑에로의 깊은 깨달음입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의 실천은 마침내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러한 아들의 모습은 진정한 섬김의 교과서 그 자체입니다.
어머니가 나랑 사시면서 달라진 여러 모습 중에 가장 반가운 것은
맘에 안 들면 당당하게 큰소리치는 것, 떵떵거리고 사는 어머니 모습이었다.
“요즘 나 밥값 하제?”로 발전하더니 10년 만에 수제비를 끓여 아들 밥상을 차렸다.
먼저 그가 변하고 어머니가 변했다. 그리고 식구들이 바뀌고 주변이 함께 바뀌기 시작했다.
놀라운 반전입니다.
그것을 단순히 기적이라고 말하기에는 아들의 사랑과 희생이 너무도 크고 아름답습니다.
결국 사랑이 생명을 낳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현대판 고려장이 판을 치고, 단절된 인간 관계가 가족관계까지 위협하는 이 시대에,
아들과 어머니는 한 편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울컥하는 뜨거운 감동이 전율처럼 흐르는 것은
그들이 부럽기 때문입니다.
함량미달의 내 사랑이, 말뿐인 사랑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네 교회가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13:35)
모자의 이야기가 새삼 너무도 당연한 이 말씀 깊이 저를 이끕니다.
전희식씨의 깨달음처럼 저의 깨달음도 생명을 낳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자 놓던 뒷밭 언덕에
연분홍 진달래 피었더니
방안에는
묵은 된장 같은 똥꽃이 활짝 피었네
예수님의 새 가족으로 부름받은 새 가정 속에서 전희식씨처럼 똥꽃을 피우고 싶습니다.
묵은 된장같은 그 똥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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